나주반 계보 - 나주반장 지정보고서에서 발췌
장인태는 당시 나주군 과원동에서 목물공방을 하던 이형연(이형연,1895-1972.6.25)에게 나주반 제작기법을 배웠다.
이형연은 조부 이의구(1841-1905)대부터 목물을 했다.
부친인 이석규(이석규, 1866.12.25-1940.3.30)을 거쳐 자신에 이르기 까지 공방을 운영하면서 나주반을 제작하였다.
이의구의 전통기법은 장인태를 거쳐 현재의 기능 보유자인 김춘식에게 전수되었다.
일본인 민예가인 야나기무네요시가 조선을 여행하며, 월간지 "공예'에 기고한 글 중에 발췌한 내용에서 이석규 소반장인에 대한 내용을 보자
야아기무네요시 외 심유성 讀 <조선공예개관 362페이지 전라기행편/1937년 10월>
"5월 66일. 오늘은 나주행이다.
조선의 소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주반의 이름을 오랫동안 들었을 것이다.
-중략- 마을 나와 나주반을 찾아보아도 파는 가게가 없다.
그렇지만 다행이도 이석규라 불리는 한 장인이 살아 있었다.
-중략- 이미 노인이었다. 그 아들과 제자가 일을 도와 주문을 받았다. 이곳의 일만은 견실하였다.고 한다
<446페이지 사진설명>-중략- "나주반의 이름도 오래 되었지만 나주를 방문해도 그 옛날의 번영은 없다.
지금은 이석규라 불리는 노공이 홀로 기술을 전하면서 착실히 일하고 있다.
만든 솜씨가 좋고 옻칠이 매우 견실하다. 주로 두가지 형태로 만든다. 열두모 소반의 높이 27.9센티미터, 지름 39.4센티미터. 귀퉁이 장방형은 높이 23센티미터, 너비 36.7센티미터, 안길이 29.1센티미터
김춘식은 장인태에게 2년여 기술을 배우다 1958년(22세)육군에 입대하여 1960년(24세)만기 제대한다. 제대와 함께 영산포에 정착하면서 처음 중앙동(속칭 오포잔등)에 공방을 마련하고 나주반 등의 소반수리를 맡아한다. 이때 제반공구를 마련하면서 기반을 다진 뒤 1년만에 본격적으로 나주반을 제작한다.
목포에 있던 스승 장인태도 모셔와 같이 일을 한다.
장씨의 가족은 대전으로 이사했고 장씨는 1975년 사망했다.
나주지역은 목물이 성행했던 지역이다. 1930년 기록에 의하면 공산품중 목제품 판매고는 58,979환에 달했다.(<전라남도 사정지> 하, 873쪽, 1930년, 전라남도 사정지간행회) 최근까지 이조목물을 만들던 이융, 박병기 등이 있었으나 서울로 옮겨가 버렸다. 특히 나주반은 박판구, 이운연, 우상숙 등이 전통을 유지하였으나 모두 사망했고 현재는 김춘식 혼자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현재 김춘식 공방은 나주시 죽림동으로 이전하여, 사남인 영민과 같이 작업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은 나주반 전수조교로 지정되었다.